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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민철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 누구에게나 충격을 주었던 암울한 역사적 사건들을 공유하고 있다. 당시 군부 독재를 하던 박정희 정권은 영구 집권을 위해 초법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여 삼권을 장악하는 유신 헌법을 강제 시행했다.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체포, 고문, 납치, 살해로 공포 정치가 이어졌다.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 역할을 했던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이 살해 된 것도 이 기간이었다. 다른 한 사건은 바로 5·18 광주항쟁 당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가 시민들을 학살한 일이었다.

1980년, 나는 전주예수병원에서 인턴 수련을 시작하였다. 휴가도 없이 한 생명을 위해 밤샘 일을 하곤 하던 때였다. 그런데 광주에서 사선을 넘어 도망쳐 나온 사람들의 증언은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우리 세금으로 나라 지키라고 무장시켜준 군인들이 그리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갑자기 의사로서 한 생명을 돕는 일이 무의미해지는 허무함이 휩쓸었다. 누구나 타고난 역사 속에서 그 시대의 아픔을 겪기 마련이다. 나도 이런 역사 속에서 신앙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잠시였지만 내가 교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5·18 희생자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인 그 해 8월, 롯데 호텔에서 열린 조찬기도회였다. 소위 내로라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다 모였는데 독재자를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로 칭송하며 아부하는 일이 TV를 통해 생중계 된 것이다. 독재자 앞에 스스로 알아서 기는 신앙,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일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정들었던 교회였지만 수련의 과정이 이어지면서 바쁘다는 표면적 이유로 자연스럽게 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실은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위로할 수 없는 교회에 대한 절망감이 더 큰 이유였다. 그렇다고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 201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사시는 도성래 선교사님을 찾아뵈었다. 아직도 아프리카에 다니신다고 한다. 오래 전 의과대학생에게 하신 말씀을 깊이 새기고 살았다고 말씀드렸더니 감격해 하셨다.
▲ 201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사시는 도성래 선교사님을 찾아뵈었다. 아직도 아프리카에 다니신다고 한다. 오래 전 의과대학생에게 하신 말씀을 깊이 새기고 살았다고 말씀드렸더니 감격해 하셨다.

의과대학 3학년이었던 1978년 겨울 방학 때 여수 애양원에 가서 3주 동안 지내며 도성래(Stanley Topple) 선교사와 가까이 지낼 기회가 있었다. 이분은 1959년에 내한하여 한센병 환자를 돌보던 애양원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한 정형외과의사이다. 한센병 환자들을 수술하기도 하고 이들의 재활에 많은 노력을 다했다. 우리나라에 한센병 환자 수가 줄어들자 애양원을 재활병원으로 기능을 확장해서 애양재활병원으로 이끌어 가신 분이었다. 그때 그분에게 들었던 말씀이 내 맘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에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제 한국의 의료선교는 한국 기독의사들이 책임질 일이 아닌가요?” 그리고 그분은 내가 이 말씀을 들은 지 3년 후인 1981년에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 케냐로 가셨다.

나는 예수병원에서 일하기로 맘을 먹었다. 예수병원은 1898년 여의사 마티 잉골드가 시작한 병원이다. 그 후 평양에서 선교사 자녀 학교를 다니고 존스홉킨스 의대를 나와 외과의사가 된 구바울(Paul S. Crane) 선교사가 한국에 돌아와 1949년에 예수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수련 제도를 시작하였다. 1954년에 설대위(David J. Seel, 외과) 선교사와 1960년대에 주보선(David Chu, 내과) 선교사 그리고 소아과의 계일락(Keller) 선교사와 윌슨(J. Wilson) 등이 합류하면서, 예수병원은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임상 교육 수준을 유지하였고 수련을 받기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대생들이 몰려 왔던 병원이었다. 이 분들을 통해 배운 영적인 가르침도 중요했지만 환자를 향한 연민과 헌신적인 태도, 그리고 수준 높은 임상 수련은 그 후로 기독의료인으로서 내 삶 전반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혼자 이룩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어깨를 빌어 그 위에 서서 더 멀리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거인들의 어깨를 빌릴 수 있는 복을 누린 난장이였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딛고 올라서라고 내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