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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20:29)

 

 

현대 과학기술의 빛나는 성과인 3D, 4D 모니터는 텔레비전과 컴퓨터, 극장 등을 통해 관객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특히 시각은 21세기에 압도적인 인식의 매체가 되었다. 이제는 명실공이 이미지 시대, 영상 시대, 시각 인식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이런 현실에 발맞춰 오늘날의 교회가 홀로그램(Hologram)으로 '3D 예수'를 만들어 복음을 전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10:17)는 종교 개혁적 명제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자문하게 되는 시점이다.

그간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명제의 위상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특히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의 영성은 한마디로 들음의 영성이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등장한 이미지 중심의 새로운 시각 문화는 믿음은 에서 난다는 새로운 현상을 파생시켰다. 과연 이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 또한 들음에서 봄으로의 문화 변동은 신앙과 영성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처럼 선뜻 답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미지: 나를 본 고로 믿느냐

 

사도 요한이 기록한 도마와 예수님의 대화 장면에서는 들음에 관한 신앙적 논쟁이 제기된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20:29).

 

여기서 예수님은 본 고로 믿느냐고 물으심으로써 ’(seeing)이 믿음에 이르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하신다. 하지만 곧이어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 되도다라고 하심으로써 보다 더 귀한 믿음의 과정이 있음을 강조하신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보지 않고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뒤이은 30절과 31절의 문맥을 보면, ‘보지 않고 믿는 것기록된 말씀’(성경)을 통해 믿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먼저 구전으로 선포되었다. 따라서 믿음은 사도들의 입으로 선포된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교회는 성령 안에서 기록된 말씀을 통해 복음을 듣고 전하는 공동체다. 교회가 고수해 온듣고 전함의 원칙은 철저하게 청음 중심인 공동체를 강화시켜 왔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의 설교(kerygma)권면(Didache)을 들음으로써 그 신앙을 전승했는데, 바로 이 들음의 기록이 곧 성경이다. 칼 바르트(Karl Barth)가 언급했듯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written)이요, 설교는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written)이요, 성찬은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the Word revealed)이다. 이중 가장 근본적인 권위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에 있다.

평민들도 문자를 자유롭게 해독할 수 있었던 주후 1세기경의 지중해 문명권에서는 성경을 헬라어로 읽고 듣는 일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초대 교회 교부들은 복음을 회화나 조각을 통해 시각화하는 일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특히 교부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는 십계명 중 우상 숭배를 금하는 제2계명에 대한 정통 해석에 따라 이교의 잔재인 우상을 기독교인들이 사용하지 말 것을 주장함으로써 복음의 시각화를 근본적으로 막았다. 뒤이어 5세기에는 마르세유의 감독 세레누스(Serenus of Marseille)가 자기 교구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 성상을 우상으로 정죄하고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조치에 대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1(Gregory I, 590~604)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세레누스에게 보낸 서신에서 교황은, “성상 숭배를 금하는 일이 옳지만, 그리스도를 시각화한 형상은 문자를 모르는 일부 무식한 사람들의 책으로서 보존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피력했다.

이후 200여 년간 성상 파괴자들과 성상 옹호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787년에 개최된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성화나 성상 같은 이미지들을 종교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이 공표됐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무지한 인간들이 그림을 통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금할 수 없다고 인정했으며, 성화가 일정 수준의 묘사를 벗어나지 않는 한 복음을 전하는 교육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승인했다.

특히 이들은 성화가 경배가 아닌 존경의 수단임을 강조했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의한 경배’(latreia)란 엄밀하고도 완전한 의미의 예배로서 마땅히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존경’(douleia)은 성화나 성상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신앙적 흠모를 가르키므로 교회 내에서 이를 용인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8세기에 개최된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거룩한 이미지들의 사용에 대해 이처럼 유연한 입장을 표명하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인 3~4세기의 수도원 선교 운동에서 그림은 이미 복음 전파의 주된 도구로 활발히 사용되었다.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중부 유럽으로 나아간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야만인들(barbarian)이 문자를 모른다는 점이었다.다시 말해, 육성으로 전한 복음의 내용을 중부 유럽인들이 기억하게 하는 데 문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선교사들은 복음의 내용을 그린 성화’(icon)를 이용해 전파한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문맹률이 낮은 지중해 연안의 그레코로만 문화권으로부터 문맹률이 대단히 높은 바바리안 지역인 당시의 중부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성화는 매우 중요한 복음 전파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선교 경험은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성상과 성화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의 영성의 부활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은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먼저 의사소통 했다. , 인간이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을 인식하는 가장 주요한 감각은 바로 시각이었다. 유럽의 복음화 과정에서도 대다수 민중들은 성경보다는 성화를 통해 복음을 깨달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도구로써 성화나 성상을 적극 활용했다. 이와 관련하여 헨리 나우엔(Henri Nouwen)동방 정교회에서 사용된 성화와 성상은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창문이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중세의 수도원은 성화와 성상의 제작과 판매에서 점차 탁월한 전문성을 갖추어 갔으며, 이후 1000년간 중세 기독교 예술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성화나 성상을 활용하는 방식에는 엄격한 종교적 제약이 있었다. 중세의 이미지들은 주로 성서 사본이나 채색 필사본 혹은 우의화집 혹은 시화집에서 삽화의 형태로만 제한적으로 활용됐다. 중세 시대에 은 어디까지나 말씀혹은 들음의 하위 수단이었다.

 

따라서 중세 기독교 문명에서 그림은 독자적인 예술의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것은 오직 복음 전파의 도구로서 하위문화(subculture)일 뿐이었다. 더욱이 성직자들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상 그림이 입체성을 가지거나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너무 실제적일 경우 우상 숭배의 가능성이 생겨나리라고 염려했다. 그래서 입체적인 묘사나 원근법의 사용은 철저히 배제했는데, 대부분의 중세 회화에서 보이는 평면성은 바로 이런 염려에서 비롯되었다.

 

 

예컨대 경배의 대상인 아기 예수나 부활하신 그리스도 혹은 성모 마리아는 거대한 크기로 묘사되는 반면, 신자들의 모습은 마치 걸리버 여행기속 소인국의 난장이들처럼 아주 작게 그려졌다. 그런데 중세에 이런 방식이 채택된 이유는 기술력이 미진했거나 장인의 솜씨가 서툴렀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신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수단이 오직 크기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중세 종교화의 이러한 비대칭성은 신과 인간 사이의 위계를 크기로써 드러내려 한 의도의 결과였다.

 

필자는 유럽, 특히 터키와 그리스 지역을 방문하여 동방정교회의 예배당에 그려진 커다란 성화들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이 성화들이 드러내는 하나님과 인간 크기의 비대칭성은 당대 신앙의 바로미터였다. , 비대칭성이 과할수록 신성이 더욱 강화되고 인간은 더욱 왜소화되었던 것이다.

정리해 보면, 중세 전기인 700년까지는 봄의 영성이 철저히 부정된 기간이었다. 그리고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에는 봄의 영성이 제한적으로 부활했다. 전반적으로 중세 시대는 보고 믿는 것보지 않고 믿는 것사이의 균형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시기였다. 이처럼 이미지가 일부 긍정되었다는 사실은 기독교 예술사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 개혁 이후의 영상 문화

 종교 개혁자들은 대체로 우상 숭배에 매우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 행하는 성자나 천사 숭배를 철저히 배격했다. ()성경적인 신비주의가 중세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원하면서 성화와 성상이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의 영성을 매개로 하여 수많은 이단과 불건전한 신비주의 신앙 운동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성스러운 인물을 형상화하여 경배하는 일은 절대 금기였다.

 

 

그리스도나 성자들을 형상으로 만들어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시다. 성경은 성자나 천사에게 어떤 종교적 영예나 경배하는 것을 허락하 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종교 개혁자들의 일반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기독교 미술사가인 한스 로크마커 교수는 개신교인들이 예술에 대해 가장 편협한 태도를 취했던 시기는 종교 개혁기가 아니라 그보다 200년 후인 18세기 이후의 경건주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경건주의 기독교가 오직 종교적 영역에만 관심을 가짐으로써 소위 세속의 영역, 즉 문화·예술·정치·사회 등의 영역을 사탄에게 넘겨주고 방임하는 이른바 사탄과의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로크마커는 시각 예술 분야인 미술뿐 아니라 디지털 영상 문화의 영역에서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거의 상실된 원인이 바로 이 경건주의 기독교의 편협성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과연 종교 개혁가들은 경건주의자들에 비해 기독교 시각 예술을 열린 입장에서 표용했을까? 실제로 종교 개혁 당시 루터(Martin Luther)와 칼뱅(Jean Calvin)은 미술과 이미지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이미지가 글자를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신앙을 알리는 계몽적 역할을 한다고 평했던 루터는 <기도하는 손>으로 유명한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와 친구 사이로 미술을 애호하고 지원하는 데 열심이었다. 또한 칼뱅의 신학적 전통을 이은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역시 미술은 그 시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세계관을 드러내는 기독 미술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종교 개혁기를 성경의 위상만을 추켜세우고 성화와 그림을 배격했던 시기라고 단순하게 평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종교 개혁기는 글과 그림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게 만든 결정적 시기였다고 평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점을 문화사가인 마크 스미스(Mark M. Smith)감각의 역사(사람의 무늬, 2010)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 ,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 하에 문서(text)를 강조하고 감각의 관능주의를 경계했던 종교 개혁은 오히려 다른 감각들보다도 시각을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종교 개혁가들은 촉각이나 청각 등 비시각적인 방식보다는 신에게 다가가는 지름길로써 말씀을 읽는 방법을 택했다. 특히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명으로 말씀을 듣는 일이 시각화된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으로 대체됐으며, 이는 근대 문명의 설립 단계에서 시각 중심의 인식론을 결정적으로 심화시켰다. 이렇게 해서 종교 개혁기에 이르러 대립 관계에 있던 개신교와 과학은 역설적이게도 함께 시각 우위의 문화를 강화시켰다고 스미스는 주장한다.

사실 문자는 그림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었다. , 표음 문자 체계에서 글자가 소리의 그림인 반면, 고대 중근동의 상형 문자 체계에서 글자는 모든 피조물의 외형을 묘사한 일종의 그림이었으며, 한자와 같은 표의 문자 체계에서는 의미의 그림이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언어학에서 거론되는 조형 언어가 바로 문자 그 자체였던 것이다. 요컨대 글자는 쓰기그리기가 통합된 시각 언어로서, 중국의 서예 기법 중 특히 초서는 이 둘(쓰기와 그리기)을 가장 완벽하게 결합시킨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종교 개혁기 이후에 강화된 시각 우위의 문화는 마침내 글과 그림을 서로 통합하는 조형 문화를 탄생시켰다. , 21세기 문명의 대표적 특성인 3D 혹은 4D 영상 문화는 종교 개혁기에 이미 그 씨앗이 심겨진 것이다.

 

 

욕망의 바다 사이버 공간

종교 개혁자들의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구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인식론의 관점에서 청각보다 시각의 우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더욱이 인쇄술과 타자기, 컴퓨터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난 변화, 문자 인식론에서 영상 인식론으로 넘어가는 문이 활짝 열렸다.

문자 인식론에서 영상 인식론으로의 대전환은 특히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가속화됐다. 지난 5000년간 인류는 글자와 종이 그리고 활자를 통해 각종 인식의 결과들을 전승해 왔다. 그러다 컴퓨터의 발명으로 인류 문화는 영상 시대로 돌입했다. 오늘날 모든 텍스트는 컴퓨터 안에서 시각화, 영상화, 이미지화된다. 그리고 현대의 젊은이들은 외부의 모든 정보와 지식을 컴퓨터 화면을 으로써 인식한다.

이런 측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빌 게이츠(Bill Gates)와 애플 사()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세계 문명사에 획기적인 전환을 일으킨 인물들로 손꼽을 만하다. 아직은 산업화 시대의 에디슨이 그랬듯 정보화 시대를 연 선구자로서만 이들을 평가하지만, 사실 이들의 역사적 입지는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인류 역사가 언어, 청각, 문자 중심의 시대에서 이미지, 시각, 영상의 시대로 본격 전환되는 과정에서 문자와 이미지를 통합시키는 새로운 기술을 고안해 낸 주축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은 명백히 들음을 앞서고 있다. 이제는 보고 믿는 일과 듣고 믿는 일의 비교 우위를 따져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렇다면 영상 혹은 또 다른 시각 매체를 통해 으로 그 신앙이 나타나든지 아니면 청각 매체를 통한 소리 혹은 들음으로 나타나든지에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 매체 모두가 성경(Text)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참된 신앙에 있어서 성경 텍스트와 괴리된 ’, 즉 이미지 과잉은 비현실이요, 허상이요, 환상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성경 텍스트와 괴리된 들음도 영적 소음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인터넷 공간은 과잉 이미지와 확대된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봄과 들음의 절제가 상실된 욕망의 바다가 바로 현재의 사이버 공간이다. 그렇다면 이 사이버 공간의 환상과 소음을 걸러 낼 유용한 틀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양심 혹은 이성인가? 아니면 강제성을 띤 법률인가?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사도 시대 이래 삶과 신앙의 유일한 기준으로서 성경이 이미 주어져 있다. 이 성경이야말로 들음의 문자화시각화된 말씀으로서 모든 영상들과 소리들을 판단할 유일한 잣대다. 요컨대 오늘날 모든 컴퓨터 그래픽의 유일한 기독교적 표준, 즉 캐논(Canon)은 또다시 성경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만으로라는 종교 개혁의 구호는 과거의 낡은 구호가 아니라 오늘날의 사이버 공간에서도 울려 퍼져야 할 21세기 기독교인들의 새로운 신앙고백 이다.

 

 

 

예수 아바타

<아바타>라는 영화가 전 세계에 몰고 온 문화 충격은 그 내용이나 메시지에서가 아니라 3D 컴퓨터 그래픽이 지닌 엄청난 시각적 영향력에서 비롯했다. 디지털 스페이스(digital space)가 아날로그 스페이스(analogue space)를 대치하는 듯한 강렬한 착시 효과가 관중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바타>는 영상 인식론의 시대로 들어선 오늘날 일종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모습을 3D로 영상화하여 전국의 모든 교회에서 상영하고, 3D 입체 안경을 일제히 낀 교인들이 아멘! 아멘!”을 연발하며 예수님을 직접 만난 것 같은 착시 효과를 경험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이때 일부 종교편집증적 경향이 있는 광신도들은 실상과 이미지를 혼동할 공산이 매우 크다. 특히 신앙의 표준인 성경의 통제력을 동반하지 않은 채 과잉 이미지를 매개로 행하는 시각적 포교 행위는 새로운 신비주의적 과잉 신앙 형태를 야기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강단 위에는 거의 대부분 대형 빔 프로젝트와 스크린이 걸려 있다. 종교 개혁 시대에는 십자가가 있던 강단 중앙 자리를 이제는 스크린이 차지하는 것이다. ‘십자가 대신 스크린이라는 이 놀라운 변화상은 교회의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종교 개혁 시대에는 그 무엇도 말씀 위에 존재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자 성찬상조차도 강대상 밑에 위치시켰다. 그러나 점차 예전이 발달하면서, 강단은 지성소적 개념으로 승격되었고 신약 시대의 예배당은 구약 시대의 성전으로 간주 되었다. 이 시기에는 성찬상이 강대상과 동등한 위치에 자리하거나 강단 안쪽의 더 깊숙한 곳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결과 예배당이 성전으로 변질되고, 강대상이 제단으로 인식되는 구약으로의 퇴행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강단의 중심에 말씀을 강론하는 강대상 대신 드럼과 기타 등의 악기가 들어섰으며, 그 위에는 거대 스크린이 높이 달려 있다.

그만큼 오늘날의 교회에서 성경의 표준은 약화되었고 감각은 지나치게 강화되었다. 특히 청각보다도 시각의 우위가 압도적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네가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더 복 되도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게 한다.

물론 주님의 말씀은 봄의 신앙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봄의 신앙이 지닌 한계를 지적할 뿐이다. 도마처럼 봄을 통해 얻은 믿음은 분명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결과다. 그러나 이 은총보다도 더 복된 은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경 텍스트 안에서 주님을 보는 것이다. 요컨대 씌어진 말씀은 시각화된 영상 메시지, 보이는 말씀에 우선한다.

성경은 모든 이미지와 소리의 절대적 표준(Canon)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초기 성상 파괴자들처럼 현대의 영상 매체를 모두 터부시하고 외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또한 지나치게 거기에 열광해서도 안 된다.

아바타 예수의 등장을 예고하는 현재의 문화적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주님의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는 말씀을 깊이 숙고해야 할 때다